제보기사

  • HOME
  • 우리동네
  • 제보기사
초보 할아버지

  아들이 늦게나마 손자를 안겨주어 모르는 이들로부터 할아버지 소리를 들어도 당연하다는 처지로 변한지가 9개월로 접어들었다. 아들부부가 둘 다 직장인이라, 7개월간 휴직했던 새아기가 출근하면서부터는 어디엔가 손자를 맡겨야만 할 처지였다. 우리가 맡겠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집사람의 허리가 부실하여 눈치만 보고 있었다. 사돈쪽은 둘째딸이 먼저 출가하여 산후조리를 한 경험이 있는지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는데, 우리손자까지 봐주신다니 정말로 고맙다. 그러나 그분들도 개인사정이 있어서 2주마다 2박3일은 우리가 맡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보았다.

  병원에서 손자를 첫 상견한 이후, 뒤집기, 배밀이하기까지의 모습은 주로 전화와 동영상으로 보았다. 인사차 몇 시간 다니러 올 때 보는 것으로 만족하다가 잠싸지 같이 자게 되었으니 가슴이 설레었다. 자식 키울대는 먹고살기 어렵던 시절이라 어떻게 키운지도 모르겠으나 60대 중반에 얻은 손자를 돌본다는 것에 기쁨과 불안이 교차되었다.

  그날도 이유식을 먹고 나더니 장난감을 이로 물고 빨면서 가끔씩 우리 부부가 박장대소하도록 눈을 지그시 감으면서 천진한 웃음을 제공했다. 거식탁자를 잡고서 몇 번 힘겹게 서다가 앉다가 하면서 여러 묘기를 보여주더니 TV장식장으로 기어갔다. 왼손으로 모서리를 짚고 일어서면서 오른손을 보태어 안전하게 일어설 줄 알았는데, 체중이 왼쪽으로 실리면서 옆으로 도는듯하더니 울음보가 터진다. 5초도 안되어 울음은 그쳤지만 이마에는 세로로 실낱같은 핏줄이 생기면서 약간 들어갔다.

  그때부터 마누라의 잔소리 아니 구중이 10분이나 계속되었는데.... 알고 지내는 노파가 아기를 보다가 실수하여 이마에 멍이 들었는데, 며느리가 직장에서 돌아와서는 거실에 잇던 화분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는 말도 덧붙인다. 새아기야 그런 몰지각한 행동을 하진 않겠지만.... 동생들이 자랄 때나 자식 키울때 그정도 상처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말 한마디 못하고 등과 이마에 진땀을 흘리며 내가 정말 죽을죄를 진 것 같은 죄책감에 빠졌다.

  다음 날, 5시에 일어나서 신문과 TV를 번갈아 보고 있자니 손자 울음소리가 들린다. 품에 안으면서 이마부터 보니 실같이 긁힌 자국만 있을 뿐 붓거나 멍이든 흔적이 없었다. 어릴 때 할머니가 "아기는 삼신이 돕는다"고 하시더니 맞는 말씀이다.

  오늘이 손자가 올 날이다. 우리부부는 명절 때나 하는 대청소를 하고 거실물건들의 모서리마다 '박치기 방지 턱'을 부착하느라 분주하다. 손자는 '오면 좋고, 가면 더 좋다'는 우스개가 실감나는 요즘이다.


이선기

등록일 : 2010.08.20조회수 : 3,109
  • 프린트
  • 목록으로
  •  
  • 트위터
  • 페이스북

의견글조사 200자 제한 의견달기
이름
내용
인증 인증 문제 답
* 관리자에게 의견글이 전달됩니다.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전체기사(하단네비)
  • 최신뉴스레터(하단네비)
  • 새창 구독신청 및 해지(하단네비)
  • 기사제보(하단네비)
  • 새창 구로구청 홈페이지(하단네비)
  • RSS(하단네비)
우)152-701 서울시 구로구 가마산로 245 TEL : 02-860-2114 / FAX : 02-864-9595
본 사이트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무단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위반시 정보통신법에 의해 처벌됨을 알려드립니다.
오늘 방문자수 : 4,403 | 전체 방문자수 : 9,018,264